기다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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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esolgiki 작성일11-04-07 15:54 조회2,57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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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사람
아직도 그 사람은 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하여 모아놓은
화분을 포장했던 종이박스며
고장난 모터와 기타 쇠붙이들
두 개의 스치로폼 박스에 모아둔 알루미늄 철사를
어제는 아는 사람한테 모두 주었습니다.
2년전 2월의 이맘때쯤
마침 일요일이라 분재원 대청소를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더랬습니다.
고물상을 기다렸죠.
마침 파란색 1톤 트럭 하나가 고물~~ 고물을 외치며 달아나길래
부리나케 쫓아가 손짓으로 불렀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여기 저기 널려있는 쇠붙이며 플라스틱
주워 모으면 돈이 되는 것들은 모두 주워담으며
한국 사람은 고생을 더 해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왠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아서 슬며시 기분이 불쾌해집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왠지 그 말투 속에 사연이 깃들어있을 것 같아
슬슬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예상대로 고물상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분이었습니다.
20여년동안 채소 장사를 하면서 돈을 모아
작년에 아파트 한 채를 겨우 마련했다고요.
그런데 그만 친구의 빚보증을 서게 되었고
사업이 망해버린 그 친구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답니다.
졸지에 빚을 떠안게 된 그분은
도저히 식구들 볼 면목이 없더랍니다.
이제 갖 집을 마련해서 들뜬 식구들을
도로 셋방으로 가자고는 도저히 할 수는 없었다고요.
죽고만 싶더랍니다.
그래서 몇 달 간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어느 날 문득 호주머니를 보니
만 원정도의 돈이 잡히더랍니다.
우유하나, 빵 하나를 사고
남은 돈으로 제초제를 사서 아버지 묘소를 찾았답니다.
아버지와 빵과 우유를 나눠 먹은 뒤
그 자리에서
제초제를 마셨답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눈을 떠보니 자기가 살아있더라고요.
옆에는 자신이 토해놓은 배설물이 보이더랍니다.
죽는 것도 맘대로 안된다고 생각해서
산을 내려왔습니다.
제초제...
참 무섭습니다.
제초제에는 그라목손이라고 하는 식물 전멸제와
근사미라고 하는 제초제,
그리고 호르몬 작업에 의해 일부 식물만 죽이는 선택형 제초제가 있습니다.
잔디밭에 쓰는 제초제죠.
첫 번째 제초제인 그라목손은
식물의 잎에 닿으면 그 식물의 엽록소를 파괴하여
나무와 풀을 죽이는 제초제입니다.
초록색을 가진 것은 무조건 죽이지만
목질화된 나무에는 비교적 안전하며
뿌린지 두 세시간이 지나면 풀들이 죽어가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애용하는 제초제이기도 합니다.
다음 지식란에 검색해보면
이 제초제를 마셨다고 결과를 묻는 질문은 있어도
질문자가 채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마시고 나서 대개 사망하기 때문입니다.
곧바로 위세척을 한다고 해도 이미 장기 손상이 진행되어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는 무서운 약제입니다.
그에 비해 호로몬제인 근사미는
나무 잎에 뿌리면 나무 줄기를 타고 내려가
나무를 서서히 고사시킵니다.
그래서 근사미란 이름 자체도
뿌리까지 말려죽인다는 의미로 지어졌습니다.
저 역시 예솔에 터를 닦을 때
집뒤 둑방에 자라고 있던 수많은 아카시아 나무를
이 근사미로 죽였습니다.
성장기에 나무를 자르고 나서
그 자른 면에 이 근사미를 바르면
아무리 독한 나무라도 거의 고사하게 됩니다.
이걸 사람이 마시면
나무와 마찬가지로 당장 증상은 나타나지 않지만
서서히 시들어가는 풀처럼 시들어가다가
결국 어느 순간 죽게 됩니다.
이분은 두 번째에 해당하는 이 근사미를 마신 것입니다.
아마 우유를 마신 후에 약을 마신덕분으로
곧바로 토해서 살아남긴 했지만
그 후유증은 무서울 정도로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는 폼이
그저 마음의 병만은 아닌 듯 싶더군요.
조금만 더 참지.
한번만 더 긍정적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해보지.
집 한 채 값을 벌었을 때는
단지 돈만 번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하여 알았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과 인맥을 쌓아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집 한 채 마련하는데 20여년이 걸렸다면
그보다 더 훨씬 짧은 시간에 만회할 수 있었을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고물장사.
닥치는 대로 걷어다가 팔고 모아서 팔고
그러면서 자꾸 힘에 부친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병원에 다녀왔느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냥 저냥 견딜만해서 돌아다닌다고요.
마침 집에 있던 암탉이 울길래
아직 식지않은 계란을 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커피 한잔도 같이 건넸습니다.
그리고 집안 여기저기를 뒤져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건네주었습니다.
고맙다며 얼마를 주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냥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안된다고요.
할수 없이 만원만 달라고 했습니다.
얼른 만원을 주시더니
자기에게 마침 장갑이 있으니 그걸 주겠답니다.
동생이 가져다놓은 실장갑이 상당히 있어
그걸 외려 몇 타래 집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퐁퐁 몇 개를 내놓습니다.
아니라고 하니까 그게 아니랍니다.
그분에게
돌아다니시다가
이발소에서 나온 의자가 걸리거들랑
분재 작업대로 쓰기 위해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또 어디에 가면 고서적이 많은데
그걸 가져다주겠다고 하더군요.
나는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요.
학교에서 와서보니 웬 카페용 회전의자 낡은 것이 하나 눈에 띕니다.
전화해보니 그분이 가져다놓은 것이더군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반드시 다시 찾아오시기를 빌며
박스며 알루미늄 철사를 2년간 꼬박꼬박 모았는데
그분은 아직 오지 않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혹간 근사미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하는 답변도 보입니다.
부디 그러길.
찾아오지 않아도 반드시 살아있기를....
돌아오세요. 어서
반드시 살아있는 그때 그 모습으로요.
예솔지기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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