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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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esolgiki 작성일10-06-24 10:15 조회1,65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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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의 아이들
처음엔 별 볼일 없이 그저 좀 특이하다 싶은 나무들이 있습니다. 왠지 그 나무를 자주 눈여겨 보다보면 그 나무에 정이 들고 손길이 한번 미칠 때마다 조금씩 좋아지는 그런 나무.
어디 나무 뿐이겠습니까? 아이들도 마찬가지여서 그렇게 예쁘게 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주례를 맡게된 아이가 그랬습니다.
그 아이는 학교 다닐 때 말썽 많은 삼총사의 하나였습니다. 수시로 수업시간을 땡땡이 치고 가끔은 아이들과 어울려 사고도 치고... 다른 반에 가면 잘릴지 모르니 나한테 맞아가면서 졸업은 해라. 그렇게 학년을 올라갈 때마다 데리고 다닌 아이들 그리고 나에게 숱하게 엉덩이를 맡겼던 아이들..
그중 한 아이가 지방 무명대학을 졸업하더니 ** 카드에 합격해서 다닌다고 인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 것이 "너, 카드 연체한 사람 찾아다니며 돈받는 일 하지? 그 사람인들 갚을 빚인줄 빤히 알면서 오직하면 연체하겠니? 그런 사람들 돈 받아서 봉급 받으면 그게 목에 잘 넘어가디?"
그 한마디가 불씨가 되어 녀석의 가슴 속에서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나 봅니다. 그 아이가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고 했을 때 미안해 하면서도 그것만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시골 고등학교 중 하위권 실력, 그리고 원서만 내면 들어가는 지방의 무명대학. 그런데 이 녀석이 5년 정도 불철주야 하더니 당당히 국립대 출신도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주례를 서달랍니다. "야임마. 나이 50도 안되었는데....그리고 나 한번도 그런 거 해본 거 없어" "저도 이 결혼 처음이예요." 하!!! 말싸움에는 절대지지 않는다는 제가 그만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그 아이의 주례를 맡아보았습니다. 간단하게 주례사만 올립니다.
주례사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의 기쁨을 전하는 오늘 일가친척 여러분, 그리고 친구들과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랑 AAA군과 신부 BBB양의 서약으로써 한 부부가 굳게 맺어졌음을 기쁘게 생각하며 축하를 위한 마당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올립니다.
50도 안된 나이에 갑자기 주례를 맡아달라는 제자의 요청에 처음엔 좀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서있는 AAA군은 자청해서라도 주례를 맡고 싶은 자랑스러운 제자이고 신부 BBB양은 그런 제자의 평생 배필이 될 사람이기에 아직 깊지 않은 인생 경험이지만 기꺼이 여러 어르신들 앞에서 주례를 맡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낭만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있으나 제 생각은 사랑은 결혼과 함께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야 말로 진정한 헌신이며 봉사며 내가 선택한 사람을 늘 곁에서 지켜주어야 하는 가장 값지고 고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린 수많은 사랑이야기에 감동하고 또 수많은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저는 오늘 이 두사람이 이런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몇가지 당부의 말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사이에는 두가지 욕망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하고픈 욕망이고 하나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사랑이란 말 그대로 헌신입니다. 상대에게 나의 마음을, 나의 모든 것을 바치는데서 시작합니다. 이해하고 감싸주고 보듬어 주면서 한편으로는 참고 기다리는 일이 따라올 것입니다. 상대를 나와 비슷한 인간으로 개조해가는 것이 아니라 맨처음 반한 모습 그대로를 지켜주는 일이며 나의 모든 것을 주어서 비로소 하나가되는 성스러운 작업입니다.
받기만 하는 사랑은 늘 허전하기만 합니다. 배고픈 아이 칭얼대듯 늘 불평과 불만을 달고 삽니다. 나를 배려해주지 못하는 상대에게 늘 짜증이 나고 왜 결혼했나 하는 후회만 깊어갑니다. 세상 그 누구도 그 사랑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는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주어도 주어도 늘 부족하기에 늘 미안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앞장섭니다. 부족하더라도 하루하루가 늘 행복하게 채워집니다.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오늘처럼 가슴 뛰며 행복한 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가다가 힘들고 지친 날이 오거든 항상 오늘로 돌아오세요. 왜 우리가 결혼했는지, 왜 내가 이 사람을 선택했는지 다시 물어보세요. 서로에게 바치는 사랑은 빈 지갑에도 배고프지 않을 평생의 밥그릇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두 사람이 이렇게 뜨거운 사랑을 평생 하기를 소망합니다. 신랑 AAA군이 걸어온 집념과 뚝심이 어린 길 신부 BBB양이 신랑 AAA군에게 보여주는 믿음과 신뢰의 얼굴로 이 가정에서 사회에서 나라에서 가장 값지고 풍성한 열매를 거둘 것이라 확신합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신랑 신부를 이토록 아름답고 현명하게 키워주신 양가의 부모님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축하를 전해드리며 주례사에 갈음 합니다.
2010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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