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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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솔지기 작성일03-11-17 16:00 조회2,30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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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어느 일요일 아침
지나가던 구경꾼들이 분재원으로 몰려왔습니다.
어른 셋에 아이 셋
어른들은 분재 구경좀 하자고 말한 다음 분재원으로 들어오고
아이들은 입구에서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분재원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른들은 다른 사람이 그런 것처럼
분재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그중 한 젊은 사람은
괜찮다고 생각되는 분재 앞에 서기만 하면
"와 이런 분재는 뇌물로 쓰면 딱이겠다."
그 말이 귀에 거슬려
"우리 분재원은 거의 98% 이상
취미로 소장하실 분이 가져가신다"고 말해주었지요.
그런데도 또 자기 맘에 드는 분재 앞에만 서면
"와 이런 분재도 뇌물로 쓰면 정말 좋겠다"라고 말합니다.
기분이 상한 제가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삐뚤어졌습니까?"
그러자 같이 온 사람들이 무안해하면서
그 젊은 사람에게 뭐라고 몇마디 건네줍니다.
기분이 상하여 분재원 입구로 돌아오니
거기는 거기 나름대로 난장판입니다.
아이들이 분재 도구를 가져다가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열심히 실습을 하고 있고
쇠파이프며 나뭇가지를 가지고 전쟁 놀이를 벌입니다.
조금전 부모가 아이들을 단속할 때
으레 그러려니 했는데
이건 장난이 심해도 너무하다 싶습니다.
그것도 아주 어린 아이들이 아닌
초등학교 3학년은 되어보이는 아이들이 이 지경입니다.
그 부모에 그런 자식들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입밖으로 튀어 나옵니다.
구경 잘하고 간다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그들 뒷모습에
소금이라도 한가마니 뿌려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들어갈수록
이른바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야흐로 저도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것 같은
씁쓸한 기분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몸으로 겪으며 깨달아가는 인생사가
분재에도 그대로 통한다는 것이 마냥 신기롭기만 합니다.
요즘 신문 사회면이나 뉴스를 보면
차마 입으로 옮기기 민망하고
자식들과 같이 보기 곤란한
그런 뉴스들이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가끔은
이제 한글을 막 깨치기 시작한 우리 딸내미가
처음 듣는 말이랍시고 단어를 하나 지칭해 물어볼라치면
참으로 답변하기가 막막하고 궁색해지는 것이 한 두 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목불인견의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우리 삶을 돌이켜보면
이런 잘못이 다른 동네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문제임을 깨닫게 되고
그때마다 어른 노릇이 참 힘들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우리 형제는 일곱 형제였습니다.
남자 넷, 여자 셋.
이렇게 많은 가족들이 한데 어울려 먹고살기 힘들 때에는
누구 하나 잘못하면 줄줄이 엮여 종아리에 빗금을 긋게 되어
서로 행동을 조심하게 되면서
이른바 '같이 사는 세상'을 체득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요즘 식당에라도 갈라치면
젊은 부부들은 자기 자식들이
숟가락을 쏟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치는 모습을
그저 대견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기만 합니다.
혹여 나이 드신 어른들이 못마땅한 얼굴로 한마디라도 이를라 치면
곧바로 아이 기죽인다고 대들면서 아이 역성을 듭니다.
당연하게 지금 아이들은 결코 기죽지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면
식탁이고 뭐고 다 뒤집어놓고 목놓아 울기 일쑤입니다.
조금 크면 수시로 가방을 싸고 집을 뛰쳐 나갑니다.
그러다가 돈 떨어지면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다른 사람들을 두들겨서 돈을 빼앗고
나중에는 제 아버지 어머니에게 달려들어 흉기를 들이댑니다.
자식으로서 의미를 잃은 이런 패륜 범죄가 빈발하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오냐오냐 하면서
아이들의 요구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기만 했지
통제하거나 버릇 들이기를 게을리 한 탓이지요.
철사를 걸고 가지를 자르고
풀을 뽑아가며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분재 역시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런 분재를 다시 바로잡으려면
도장한 가지를 자르고 제멋대로 자란 가지의 방향을 수정하고
이미 말라버린 속가지를 다시 만들어내는
대규모 개작이나 수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전문가의 손에서도 3년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내 자식이라 하여
그것도 한두명 밖에는 안되는 귀한 자식이라 하여
제멋대로 가지를 뻗고 도장하도록 내버려둔 결과가
이런 어수선한 세상을 만든 주범이라고
그 주범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런 자식들을 키워낸 우리라고 한다면
이것은 지나친 억측일까요?
가지를 자르는 것이 두려워 끝내 망쳐버리는 나무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성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절제와 조화의 미 대신에
어떻게든 우리 아이만큼은
도장지처럼 돋보이는 아이로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전체 사회를 이 지경으로 몰고 오지는 않았는지
잘 만들어진 분재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말해줍니다.
그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해
수없이 많은 날들을 철사로 감기고 가지를 잘리고
그런 인내와 고통의 끝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이기에
누구에게나 기쁨을 주고 감동을 주는
뜨거운 날을 맞이하게 되었노라고.
그럼 즐거운 시간들 보내십시오.
예솔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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