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침, 강천사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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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솔지기 작성일03-11-10 11:32 조회2,580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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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가뭄에 콩나듯한 일이지만
광주에서 이곳 산골 마을로
승준이네 반에 한아이가 전학을 왔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반가운 이 현상이
우리 승준이에게는 반갑지 않은 모양입니다.
지난 번 친 월례 고사에서
그 아이에게 문제 한 개 차로 2등을 했거든요.
내 입장에서 보면 경쟁자가 생겨 아주 다행한 일이지만
우리 못난 아들, 1년 6개월만에 일등을 놓친 아쉬움이 컸었는지
아니면 이젠 맘놓고 놀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왠지 시무룩해 보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말했지요.
우리 돌아오는 일요일 아침에 강천산에 가자!!!!
참으로 모처럼만의 산행이었습니다.
바로 앞산같은 가까운 곳이지만
단풍이 제철인 시기에는 가본지가 언제인지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합니다.
그때 맑은 물에 떠오던 붉은 단풍잎이
너무너무 아름다워
아주 오랜 기간 강천산 하면 그 풍경을 담고 살았는데
그 기간이 무려 십년이 넘게 흐른 것 같습니다.
참으로 무심한 세월입니다.
일요일 아침
승준이는 날도 밝기전인 새벽 5시에
마침 주말을 맞아 다니러온 매제 아들과 함께
어서 일어나라고 졸라댑니다.
이런 애가 아닌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말해놓고
집에서 나선 시간이 일곱시.
요때쯤이면 강천산에 무료 입장할 수 있다는 얄팍한 계산도 하면서
매제와 매제 아들래미, 그리고 승준이랑 넷이서
강천사를 향하여 시동을 겁니다.
매표소 부근-아침 연무가 낀 단풍나무 길 |
아침 안개런가.
연무가 보일 듯 말 듯 낀 강천사 입구는
이미 단풍 터널입니다.
같은 단풍이라도
어느 부분은 노랗고 어느 부분을 빨갛고
색색이 놓치기 싫은 현란한 색깔로 단장을 하고
가을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한 우리나라 공무원들
이미 일어나 입장료를 받더군요.
어른 꺼 두사람 으로 무려 2천원만 지불하라는 특별 배려를 받아
강천사로 접어드니 먼저 청아한 물소리가 귀를 밟고 갑니다.
금강교 입구는 온통 단풍나무 터널입니다. |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단풍은 점점 붉어집니다.
먼 산자락도 빨간 잉크 번지듯이 번져갑니다.
아이 둘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재잘거리며 노래를 하며 앞서갑니다.
방안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만 한다고 늘 다그쳤었는데
이렇게 밖으로 나오니 아이가 먼저 좋아하는 것을
그동안 참으로 무심한 아빠로 살아온 날들이 보입니다.
돌아가는 길-끝을 볼 수 없기에 우리는 이런 길을 만날 때마다 인생을 떠올립니다. |
카메라로 괜찮다 싶은 풍경을 거둬들이면서
왕복 한시간 반 정도 잡은 거리를
서두를 것 도 없이 느긋하게 걸어갑니다.
이곳 저곳 카메라를 담아내다 보니
나 혼자 자꾸 걸음이 뒤쳐집니다.
그러다가 아하!!!
거미줄에 매달린 단풍잎 하나.
공중에서 그네를 타는 장면이 눈에 띕니다.
몇번의 시도 끝에 거미줄에 매달린 단풍을
카메라 안에 집어넣습니다.
주위에 널리고 널린 단풍인데
이렇게 만나는 단풍은 왜 이다지도 새롭고 신기한 것인지.
거미줄에 매달린 단풍나무- 단풍과 거미줄의 인연에 웃음짓게 됩니다. |
그렇게 걸어 일주문 안에 다다르자
우리 일행은 단풍속에 갇히고 맙니다.
단풍의 계곡- 미지의 곳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은 아닌 지.... |
단풍의 계곡- 아름다움은 늘 이렇게 우리 가까이 있었습니다. |
강천산에서 꽤나 유명한 작은 폭포-얼마나 많은 카메라들이 이 풍경을 담아갔는지... |
현수교까지만 가자.
아이들에게 그렇게 이르고 강천사 경내를 들여다보니
적요한 아침 공기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일주문-단풍과 짝을 이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
강천사 앞에 삼백년 되었다는 모과나무에
동터오는 새벽 어스름이 걸려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달한 현수교 광장.
아이들은 이미 철제 계단을 올라
현수교 위에서 아빠 빨리 오라고 소리칩니다.
-이 정도 부분에서 같은 시각에 오른
오마이 뉴스 김정은 기자의
아이들에 관한 대목이 보이더군요.
선수를 뺐겼습니다.
그래. 거기까지만!!
조금전 아이들에게 해둔 소리도 있고 해서
50미터(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그정도)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어?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겨우 계단 중간쯤에 왔는데
왜 이리 숨이 학학거리는지?
예전에는 산에서는 날아다녔었는데
그리고 끊임없이 분재일을 하면서
체력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믿었는데
7부 정도 오르니 아예 주저앉고 싶어집니다.
그제서야 집사람이 진작부터
달리기를 하자고 할 때 바쁘다는 핑계만 대지 말고
같이 좀 달려볼걸 하는 후회를 합니다.
단풍나무길-나무도 마음도 온통 붉게 타오릅니다. |
강천사 - 아침 고요가 머물고 있었습니다. |
현수교-올라올 때는 학학거리느라 사진 찍을 염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
그러나 늦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현수교를 건너
가파르기 이를데 없는 전망대를 향해 걸어갑니다.
"아빠, 빨리 오세요"
세상에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고픈 사람에게
이보다 가혹한 고문이 어디 있습니까?
어쩔 수 없지요.
아이들 뒤에 한참이나 뒤쳐져서
가끔씩 아침 햇살에 물드는 산자락의 모습도 찍어가며
한 걸음 한 걸음 산길을 오릅니다.
현수교 아래에서 본 구룡폭포쪽 풍경 |
현수교 아래 광장의 풍경 |
가다보니 아주 다정해 보이는 세 사람을 만납니다.
경기도 안산에서 오셨다는 데
두사람은 부부, 그리고 한분은 여자 노인네입니다.
어머님인듯, 그러나 힘에 부친 노인분께
여기 산행은 무리라고 설명을 해드리고
사진 한컷을 기념으로 남긴 다음
다시 산행을 시작합니다.
안산에서 오신 세분. 이 글을 읽으실런지.....명함은 드렸는데 |
몇번 이 곳 전망대까지 오른 경험이 있어
이 길이 얼마나 가파르고 위험한지 익히 알고 있지만
오늘따라 이 길이 더욱 힘겹습니다.
겨우 나이 사십을 넘기면서
아들에게 엄청 늙은 아빠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침 일찍 나오면서 두른 겨울 파카 안에서는
아침밥을 짓는 것인지 모락모락 김이 배어나옵니다.
산정상에서 본 강천산 일대-연무에 덮인 모습이 보입니다. |
그렇게 해서 산 정상에 오르니
일행인 듯 이미 정상을 차지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아이들이 물을 먹고 싶어 하길래
그 분들에게 가서 물좀 얻어 마시고 오라니까
아이들이 얻어먹는 것은 죽어도 싫댑니다.
어쩔 수 없지요.
그러면서 아들놈이 그럽니다.
아빠는 왜 이렇게 힘들어해요?
야 임마, 그럼 티코하고 덤프트럭하고 같애?
아무래도 아빠가 더 크니까 올라올려면 연료 소모량이 많지.
그 티코는 벌써 아래쪽을 향하여 날아갑니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아이가 저만치 앞서가는 것이 보입니다.
"아들!! 아빠 업고가!!"
하고 요녀석을 불렀더니
"티코가 덤프트럭을 어떻게 업어요?"하더니
동생 녀석과 같이 아래쪽으로 줄행랑칩니다.
내려오는 길에 본 단풍은 더욱 곱습니다.
그렇게 해서 강천사 앞에 다다라 물한잔을 마시고 나니
그제서야 세상이 똑바로 보입니다.
그 눈길에 첫 번 째 비친 풍경이
스님 두분이서 낙엽을 쓸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쓸면 낙엽이 되겠지만
스님이 쓸면 번뇌를 쓸어내는 것이라
엄청나게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며
강천사 안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내려오는 길- 강천산 부근 |
번뇌를 쓸어내는 스님들. |
오랜만에 절을 둘러보니
퍼뜩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처마 밑에 매달린 곶감입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맞아요, 지금은 아침도 먹기 전입니다.
이 곶감을 보고 얼마나 배가 고프던지.... |
사람들이 많이 올라옵니다.
화창한 일요일 아침.
이미 길에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그사이를 헤집고 걸어가며
주위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냅니다.
다리 위에 만들어붙인 산토끼 모형위에
누군가 빨간 단풍잎을 얹어놓은 것이 보입니다.
누구였을까?
이 정도의 낭만과 여유로 자신을 찾아간 사람은?
하긴 저 역시도 걷는 걸음이 팔자 걸음이니
여기서는 그런 사람 부러워 하지 않아도 좋을 듯 싶습니다.
토끼와 단풍 |
역광으로 비치는 빛나는 단풍을 향하여
카메라 셔터를 몇번 누른 뒤에
병풍 바위 앞에 서니 폭포수가 떨어집니다.
싸한 물줄기가 옷이며 얼굴로 날아듭니다.
장쾌한 물소리는 땀방울을 씻어갑니다.
시간은 이미 아홉 시를 지납니다.
역광으로 본 단풍 |
눈이 부셔서...... |
병풍 바위와 인공폭포 |
매표소 입구에 좌판을 벌인 할머니들의 살림을 구경하자니
집에서 빨리 밥을 먹으러 오라고 전화가 옵니다.
하여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아이들을 찾으니
아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손바닥만한 주위를 다시 한번 돌아봐도
아이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아이들을 남겨두고 매제랑 둘이 차에 오릅니다.
제까짓것들이 알아서 오겠지.
겉으로는 태평이지만
두 집안 다 큰아들들을 잃어버렸으니
아침 얻어먹기는 다 틀린 것 같습니다.
아니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강천사.
가까이 있으면서도 참 멀게 느껴지던 곳
때로는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다고
가볍게 여겼었는데
단풍드는 시기를 제대로 맞춰 찾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막상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긴 다음 산에 오르니
아침 밥맛이 꿀맛입니다.
물론 아들들을 잃어버리고 우리끼만 왔다고 혼나긴 했지만요.
그럼 즐거운 한주 보내십시오.
예솔지기 드림
댓글목록
박상용님의 댓글
박상용 작성일
정말로 보기 좋은 가을단풍을 마음껏 구경했습니다.
강천산 언제고 꼭 가보고 싶은 충동이 드네요. 지
금쯤은 가을단풍이 예전의 곱던 모습은 아닐테지
요. 덕분에 올가을 단풍구경 잘 했습니다.
조규용님의 댓글
조규용 작성일
4년 전엔 겨울 강천산을, 그 이듬해는 봄 강천산을, 또 그 이듬해는 여름 강천산을 다녀 왔드랬죠.
이제 가을 강천산 차례인데, 이 가을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단풍 든 강천산 구경은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건지...
강천산의 가을 절경 사진들, 잘 담으셨고 잘 구경했습니다. 예솔지기님, 사진사로 나가셔도 되겠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