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어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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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솔지기 작성일03-11-06 09:37 조회2,397회 댓글1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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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어째, 오늘 가현이 수술 받는데...'
아침 밥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하던 아내가
접시를 든 채 망연자실해합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접시를 받아보니
한쪽에 쌀알만하게 깨진 흔적이 보입니다.
오늘 아침에 깨진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이야기를 했지만
오늘 대수술을 앞둔 가현이 생각에
스스로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수술을 앞둔 조카에게 전화를 하고
막상 학교에 출근하기는 했지만
도저히 마음을 잡을 수 없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아이의 해맑은 얼굴과
정말 아무 죄도 없이
자기의 병명도 모른 채
최악의 상황이 오면 죽을지도 모르는
그 아이의 손에 작은 체온이나마 더해주고 싶은데
물리적으로 느끼는 거리는 너무 멀었습니다.
한시간 내내 교정을 배회하다가
마침내 조퇴 허가를 받고
대구로 향하는 길은 너무나 맑게 개어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티 하나 없이 푸른 가을 하늘
거기에 맑은 바람까지도 전형적인 가을 날씨입니다.
이 공기 어디에도
아픈 사람들의 한숨은 묻어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대구에서
아내는 이번이 세 번째인 대구 길을
용케도 이리저리 잘도 찾아갑니다.
저는 길눈이 아주 어두워서
한번 갔던 길도 다시 찾으려면 몇 번을 헤매야 하는데
이번 대구길이 운전경력 10년 만에 처음해보는 도심 한복판의 운전이면서도
아내는 그 복잡한 길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대구 파티마 병원으로 들어갑니다.
아이 아빠가 먼저 우리를 발견하고
앞으로 나서려다 주춤 멈춰 섭니다.
악수만 하고 곧바로 아이가 입원해있는 병실로 향했습니다.
거기 조카 아이가
너무도 갸날픈 몸으로 환자복을 입은 채 누워 있습니다.
그 옆에서 아이 엄마는
마치 어린 아이와 놀 듯 아이와 함께 놉니다.
환자나 보호자나 전혀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이번 수술을 잘 받으면 완치 된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아이 엄마 옆에서
나는 그 아이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습니다.
자꾸 눈에 물기가 어립니다.
그렇게 예정된 시간이 오후 세시.
아이는 마침내 침대에 실려
일층 수술실로 향합니다.
이미 일주일 전에 일차 수술이 실패를 해서
아이에게도 낯익은 수술실.
경황이 없어 아이를 따라잡지 못한 아이 엄마에게
간호사는 단 한순간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곧바로 아이를 수술실로 밀고 갑니다.
병실에서는 아이와 함께 농담하며 장난을 치던
아이 엄마의 오열이 터져 나옵니다.
아이 엄마를 달래놓고
잘될 거라고 위로는 하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그 아이.
여름 방학에 예솔에 와서
지금 현재 여러분이 보시고 계시는 예솔운영 프로그램을 짜준 아이.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상고를 다니다가
한양대에서 주최한 컴퓨터 프로그램 경진 대회에서 동상으로 입상한 아이.
남이 버린 286 컴퓨터로 프로그램 짜는 것을 배운 아이.
컴퓨터 학원은커녕 단돈 만원짜리 컴퓨터 서적을 구할 길 없어
6개월이나 참고 참으며 기다리던 아이.
그리고 경북대에 올해 입한한 새내기 대학생.
그리고 우리 집사람 바로 위 언니의 큰아들.
얼마전 군입대 징병 검사를 받으면서
아이는 설문지에 자신을 "정신병자"라고 체크했답니다.
손이 떨려서 잘못 체크가 된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큰처형과 같이 웃었었는데
아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지난 주 화요일(10월 25일) 이었습니다.
뇌 혈관 질환이었습니다.
뇌 동맥이 기형으로 발달해서
머리 속에 지름이 6cm나 되는 혹이 자라면서
왼쪽 뇌를 누르는 바람에
오른쪽 팔다리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빠지면서
마침내 수업 시간에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MRI사진에 나타난 그림을 보고
의사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견뎌 냈는지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열 아홉 살의 삶을 살아오면서
그렇게 죽음의 혹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두 시간에서 길면 세시간에 걸쳐 수술이 진행된다고 했으니
수술은 아마 늦어도 여섯시면 끝날 것입니다.
의사들은 수시로 출입문을 드나들며
무엇인가를 가져다 날랐고
우리는 입술을 바짝 바짝 태웠습니다.
아이 엄마는 소파 위에 엎드린 채 기도를 하기도 하고
이곳 저곳을 정처없이 서성이기도 하고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있기도 했습니다.
아이 아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해야
제가 생각해도 되지도 않는 말로 위안하며
아이 아빠를 데리고 현관 밖으로 나와
애꿎은 담배만 나눠 피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정된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수술은 세시간 안에 끝나야 한다는데
아이 엄마는 이제 얼굴이 푸르딩딩해보입니다.
마치 죽음의 터를 배회하는 듯한 얼굴.
초점도 때론 불분명해 보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는 의사들을 붙잡고 경과를 물어보면
그저 "진행중"이라는 짤막한 답변 하나 뿐입니다.
이 수술은
혹으로 들어가는 피를 막기 위하여
뇌 동맥 혈관을 막는 고난도 수술이라 했습니다.
뇌종양이나 뇌암, 혹은 뇌출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참으로 어렵고 까다로운 수술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병 자체가 희귀한 병이라 했습니다.
뇌에 이르는 동맥중에서 어느 동맥을 막느냐에 따라
아이는 평생 불구가 될 수도 있고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고
말을 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반신을 평생 사용하지 못할 수 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수술이 잘못 되거나 혈관이 터질 경우
아이는 죽음으로 내몰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지금
어떤 결과가 자신에게 일어날지도 모른 채
단시 수술만 하면 건강해질 거라고 믿으며
열 아홉 살의 목숨을 수술대 위에 눕혀놓은 것입니다.
마침내 집도를 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모습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사 선생님은
두 번의 시술이 모두 실패해서
지금 세 번째 도전 중이라면서
이 수술마저 잘못 될 경우
하반신을 가장 먼저 포기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혈류가 너무 강하여
혈관을 막으면 터지고 막으면 터지고 하여
의사들이 그렇게 수시로 수술실 문을 드나들며
각종 수술 재료들을 가져다 날랐던 것입니다.
나중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무려 다섯사람을 수술할 분량의 재료가 사용되었다고 했습니다.
아이 엄마가 입을 틀어막은 채 오열을 터트립니다.
아이 아빠의 눈도 충혈되어 있습니다.
저는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 몰라 천장만 바라봅니다.
시계는 이미 7시 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애초에 약속했던 시간보다 한시간 반이 지난 것입니다.
그후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 몇번 물을 마신 기억 외에는
늘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는 시계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9시가 지나가자
마침내 이번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땀에 후줄근히 젖은 모습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지금 상태로서는 수술이 가장 잘 됐다.
그러나 막았던 곳이 언제 터질지 모르니까
내일 아침까지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
손을 맞잡고 몇번이고 고맙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생명에 대한 외경, 최선을 다해 노력하신 그분이
한 가족에게 빛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세 번째 시술도 실패를 하고
네 번째 시술에서 기적적으로 혈관을 막았다는 설명에
우리는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수술을 마친 아이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 최종 판단이 나왔습니다.
"어제보다 경과가 아주 좋다"
지금까지의 온갖 근심을 털어버리는
참으로 반가운 전화였습니다.
지금 그 아이는
이렇게 가장 중대한 두 번째 고비를 넘겼습니다.
일주일 넘게 중환자실에 머물러야 한답니다.
앞으로 몇번의 고비가 더 있을지 모르지만
여기까지 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도
같이 힘을 보태주십시오.
마음이 하나로 모아져 아이의 아픈 곳에 가 닿을 때
생명의 빛은 아이의 몸에서 더욱 뜨겁게 일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복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예솔지기 드림
댓글목록
강돈원님의 댓글
강돈원 작성일
좋은 결과를 기대합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 시점에서 올 한해가 다 가기전에 모든것이 잘 마무리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래저래 올해는 우환이 겹친한해라 생각하시고 더 좋은 내년을 맞기 위한 고통이라 하십시오.
조양길님의 댓글
조양길 작성일주님에 진리가 조카분과 함께 하길 기원 합니다.
조성수님의 댓글
조성수 작성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적습니다...
잘 되야 하구 ...잘 될겁니다. 왜냐면 예솔님 글을 읽는 모든사람들의 마음이 한마음 일테니까요.
강규영님의 댓글
강규영 작성일예솔지기님... 힘내세요..조카는 반드시 건강을 회복할것입니다. 모든이의 염원으로 쾌유할것이오니 애꿋은 담배만 죽이지 마세요.
김천구님의 댓글
김천구 작성일글 읽으며 눈물이 날려고 해 억지로 참았습니다. 오랜만에 들렸더니 그 동안 예솔에는 사연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겐 잘 보여 주시지 않는 주님의 능력이시지만 조카분과는 함께 하실겁니다. 반드시 ...
조규용님의 댓글
조규용 작성일저도 가현이에게 생명의 힘을 보탭니다. 이재룡선생님도 용기 잃지 마시구요...
심의수님의 댓글
심의수 작성일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과 주변 가족들의 사랑이 그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용범님의 댓글
이용범 작성일
그런일로 이곳 대구를 다녀가셨군요. 오시기전에 연락을 주셨으면 길이라도 잘 안내해드렸을 텐데 경황이 없으셨나 봅니다.
아뭏든 조카님의 쾌유를 빕니다. 그리고, 가족 친지님들께도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힘내십시요.
예솔지기님의 댓글
예솔지기 작성일모두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중환자 실에 있긴 하지만 상태는 상당히 호전 되고 있습니다. 생사의 고비를 몇번 넘기는걸 지켜보면서 생명에 대하여 생각하는 바가 많습니다. 저희 아버님 역시 건강을 많이 회복하셨는데 모두 여러분의 성원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김기영님의 댓글
김기영 작성일이제사 글을 보았네요.... 호전되고 있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앞으로도 많은 분들의 희망이 어긋나지 않길 빌겠습니다.....
윤희진님의 댓글
윤희진 작성일가현님의 쾌유를 기원합니다.부모님과 예솔지기 내외님 용기와 희망을 가지십시요.멋진 모습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최철부님의 댓글
최철부 작성일지금쯤은 많이 좋아져있었으면 좋겠네요 가현이는 꼭 부모님과 주위분들의 사랑에 응답할것입니다
설동건님의 댓글
설동건 작성일
조카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그 동안 마음 고생많으신 가족, 친지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모두 더욱 건강하시고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 마음 모아 빕니다.
김정은님의 댓글
김정은 작성일원장님의 갑작스런 전화에 반가움이 앞서면서도 무언지 느껴지는 목소리의 초조함이 이상타하였는데 이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송하군요...제가 동안 참으로 예솔에 무관심하였었다는게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합니다. 모쪼록 힘내십시요. 비온뒤엔 땅이 굳는다지않습니까. 저역시 어머님 병세가 날로 깊어져만가는터라 다른 겨를이 없더군요. 정말 건강한것만큼 행복에서 우선시되는 조건은 없나봅니다. 평생 고생하시다 늦게야 며느리덕볼려나 싶으신데 저렇게 힘겨워하시니 걱정입니다. 저보다 원장님 마음이 더 무거우실텐데 괜시리 제가 쓸데없는 넋두릴했나봅니다. 모쪼록 훌훌털고 모든게 좋아지고 모두가 더욱 행복해지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최규근님의 댓글
최규근 작성일
모두들 잘 될 것입니다.
제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