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분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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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솔지기 작성일03-10-22 11:36 조회3,16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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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기존에 저하고 둘이서 밭작업(소재를 밭에서 캐오는 작업)을 같이 하기도 하고
좋은 소재를 예솔에 알선해주기도 하면서
분재밥을 같이 먹어온 분이
새롭게 가게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있던 분재원자리가 철거되고 이사를 하게 되면서
이번에는 분재원 대신 화원을 차려놨더군요.
처분하고 남은 분재 이삼십 개가
관엽과 꽃의 화려한 그늘에 가려진 채
한쪽에 밀쳐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이니만큼
잘되기를 빈다는 덕담끝에
경기를 물으니 분재보다는 낫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씁쓸히 웃는 모습에
저 역시 같이 씁쓸히 웃어주었습니다.
분재가 좋아 분재원을 했던 사람들이
주위에서 하나 둘 여러 가지 이유로 문을 닫는 것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합니다.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분재원 문을 닫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분재가 돈이 안벌려서라는 문제보다
다시 시작하는 마당에
분재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말을 하더군요.
쓸만한 소재가 생산되고
쓸만한 작품이 시장에 나와주어야 하는데
지금 사정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지요.
나날이 분재 취미인들의 안목은 높아가는데
거기에 걸맞게 소재 생산이 안되는 국내 형편과
자연산 소재도 더 이상 채취가 안되는 형편에서
분재원을 다시 열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설사 분재 소재를 채취한다 하더라도
이미 산에는 소재가 고갈된 상태이니
힘만 들고 소득이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하긴 유능한 분재인들이 분재를 전업하기 보다는
조경쪽이나 관엽쪽으로 대거 돌아서는 형편이고 보니
분재를 떠난 그분에게 달리 뭐라 드릴 말씀도 없었습니다.
자기가 애착을 갖던 사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기존에 형성해놓은 인맥이나
사업 구조를 송두리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늘 앞치마를 두르고 분재에 물을 주던 안 사장님이
이제 이 선생님 오실 일 없겠네. 하면서 웃습니다.
아마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했더니
올 때마다 저녁을 맛있는 걸로 골라 사줄테니 놀러 오라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애달프다 못해 서글퍼집니다.
이번에는 다른 분재원에 갔습니다.
예솔에 좋은 작품을 우선으로 소개해주시던 분이고
한때는 전국 어느 분재원에나
그분이 키운 나무가 없다고 하시던,
제가 누구라고 하면 여러분들도 아실 그분이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분재 단지가 만들어져 이사한 곳이었는데
눈에 띄는 작품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문 앞쪽에 철쭉 2~4년생 묘목을 놓고 파시면서
요새는 이것 아니면 사람 그림자조차 구경하기 힘들다며
한주에 2천원하는 왜철쭉을 포장하다말고
가식없는 웃음을 보여줍니다.
경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진데
지난 IMF때와는 사뭇 다른 현상입니다.
그때는 높은 이자를 견뎌내지 못한 사람들이
집안에서 소장하던 나무들을 쏟아내어
비교적 쓸만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제는 왠만한 분재원에 가도
좋은 작품은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설사 눈에 띄더라도 부르는 것이 가격입니다.
더구나 지난 IMF때 소재를 하던 사람들마저
묘목을 심지 않거나 커나거던 나무마저 뽑아내고
거기에 채소를 심는 바람에
해묵은 소재도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이런 좋은 분재의 품귀 현상에 발맞춰
분재 작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습니다.
IMF 기간을 거치면서 부의 재편성이 이루어지고
더구나 삼성이나 현대같은 대기업에서
좋은 나무들을 돈을 앞세워 사재기하다시피 사들이는 바람에
시중의 분재는 나날이 줄어듭니다.
일반 취미인들의 발길은 거의 끊기고 가격은 상승하고
문을 닫지 않는 분재원이 오히려 이상해보일 정도입니다.
어디 분재뿐이겠습니까?
대형 백화점들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명품족들의 소비가 급감하고
가게라고 벌려놓은 사람들은 모두다 아우성인데요.
거기에 가장 경기가 민감한 분재계가 죽는다고 엄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예솔지기는 이미 2년 전부터 자연산 소재의 고갈을 예견해왔고
이미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착실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하여 우리 사이트 분재 쇼핑란에서
비교적 소재 차원의 나무들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작년 대비 가격을 거의 인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이젠 힘이 들게 되었습니다.
분재 조합 사이트에 올라온 소재들의 가격이나
시중에 나도는 작품들의 가격을 감안하면
이제 더 이상 낮은 가격으로 여러분과 만나는 일은 힘들어집니다.
소재는 한정이 되어있고
예솔은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하니까요.
그러나 한가지 변함이 없는 것은
그래도 시장 가격에 비해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그리고 제대로 된 작품과 만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한주 한주 팔려나가는 명품들이
돈을 떠나 한없이 안타까운 것은
불과 일년전만 하더라도 이런 나무들을 대량으로 구입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것들을 한 주 단위로 구입하기 힘든 것은 물론
아예 구입하기 조차 어려운 상황이 곧바로 닥칠 것이라는 예감입니다.
아니 지금 시작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누구는 그럴지 모릅니다.
까짓거 외국(주로 일본을 지칭한 듯)에서 수입해오면 될거 아니냐구요.
맞습니다. 수입해오면 모든 것이 간단히 해결됩니다.
일부 국내에서 어느정도 모양을 갖춘 재배목 소재를 구입하는 것보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가격이 훨씬 저렴한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수입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해마다 일본에서 수입되는 분재목들이 넘쳐나도
거의 사스끼 한종류에 그칩니다.
자연목은 거의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일본에 자주 다니시는 한 분재인에에 이 사실에 주목해 내막을 알아보았더니
일본 자연산은 우리가 손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연산과 실생목중에서
비슷한 모양, 비슷한 크기의 같은 수종을 두고
실생목이 오히려 자연목보다 조금 더 잘생겼어도
자연산과 재배목은 6배 정도의 가격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현상도
일본 현실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예솔의 장점이자 최대 무기였던
대량으로 구입하여 낮은 가격으로 공급한다는 저의 생각은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아니 이런식으로 운영하면 현상유지마저 힘들다는
씁쓸한 예견을 하게 되는 것도 이런 현상에서 비롯됩니다.
나무를 분양하고 나면
같은 가격대의 나무를 최소한의 이윤을 포함하여 재구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니 올해 5월을 마지막으로 하여
좋은 작품이 시장에 나오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으니
이자율은 낮고 가격은 오르는데
굳이 분재를 내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들을 어느정도 의식하고 있었기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얼마전에 예솔의 명품 가격이 슬그머니 인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격 체계도 오는 12월 말까지만 그대로 유지하고
내년에는 아예 회원 가격마저도 공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날이 치솟는 작품 가격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
이젠 거의 무의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처럼 올려드리는 글이
바람직하고 희망적인 이야기이어야 할텐데
그 기대를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글을 올릴 수 밖에 없는 저 역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누가 뭐래도
분재원이 살아남는 것은 분재인들이 있어서인데
지금 분재계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분재인들과 거리를 벌려놓고 있으니
결국 분재라는 것이
돈있는 사람의 잔치라는 공식을 깨트리려 나름대로 애써왔지만
이젠 그 한계에 온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깊은 이해를 바라면서
더 늦지 않을 때 서두르는 것도
분재인이라면 당연히 욕심낼만한 일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빕니다.
예솔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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